# hin meo l GA neul eo na go jeum Sal I gip eo jeo do na neun jo a na na I GA….
카카오톡으로 알 수 없는 기다란 링크가 하나 날아왔다. 90세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링크 보내는 법을 배우셔서 가끔씩 이렇게 카톡으로 내게 링크를 보내곤 하신다.
첼리스트인 조카가 리옹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탔다는 뉴스 링크를 보내기도 하시고 재미있는 몰래카메라 영상 링크를 보내주기도 하신다. 그런데 이번 링크는 어디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실수려니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튿날 통화할 때 어머니가 내게 물으셨다.
“어제, 내가 보낸 것, 읽어 보았어? 어디 틀린 것은 없었어?”
“어제 보낸 링크? 아무것도 안 열리던데요?”
“틀린 곳 있으면 알려줘야 내가 고치지.”
그제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통화할 때 새로 작곡한 노래의 가사를 불러달라 하시면서 받아 적으셨기 때문이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요즘 영어를 배우면서 내 노래의 가사를 영어로 옮기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어야 했는데….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꿈꾸셨다. 그런데 여자는 많이 배우면 안 된다는 외할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몰래 나가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도 하였으나 외조부는 외려 화를 내시며 끝내 고집을 꺾지 않으셨고 결국 어머니는 울면서 배움의 꿈을 접으셨다.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시고 4남매를 낳으면서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시다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에 불이 나서 전주로 이사 나와 온갖 궂은 일로 우리를 키워내셨다. 그러면서 가끔씩 당시에 어머니가 합격했었던 이리여중을 나오고 국내 최고의 병원과 가천대학을 일궈 낸 연배가 비슷한 자신의 사촌 친척 이길녀 총장의 이야기를 종종 하시면서 본인도 그때 배웠더라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회한어린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지난해 내가 퇴직을 하고 새로 대학에 들어간다 했더니 당신도 노인대학에 다니겠다 하셨다. 그러더니 올해부터는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3월만 하더라도 A, B, C, D를 힘겹게 읽으시더니 이제는 철지난 달력의 뒷장에 내가 작곡한 노래의 가사를 적어 놓고 한 글자 한 글자 영어로 옮기고 계셨던 것이다.
그랬다. 어제 카톡으로 보내온 게 링크가 아니었다. 내가 불렀던 내 노래의 가사를 오전 내내 영어로 옮기고 그걸 다시 카톡으로 써서 오후에 내게 보내온 것이었다. 아차 싶어 다시 읽어보니 역시 그랬다.
90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돋보기를 쓰고 식탁에 앉아서 달력의 뒷장에 아들 노래를 한글로 큼지막하게 써 놓고 그 가사말 아래 다시 영어로 한 글자씩 바꿔 써 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다.
어머니의 링크(?)는 이렇게 끝이 난다.
na neun jo a ne na I GA ne mo soup I na neun jo a~
이 곡을 어머니에게 바친다.
`흰 머리가 늘어나고 주름살 깊어져도
나는 좋다. 내 나이가 내 모습 나는 좋다.
너는 나만큼 살아 봤니 나는 살아봤다.
눈물 콧물은 쏟았지만 이만큼 살아냈다.
은빛 머리 깊은 주름 세월의 훈장이다.
나는 좋다. 내 나이가 내 모습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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