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꼬리 삼 년 둬도
개 꼬리 삼 년 둬도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4.08.01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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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족제비의 누런 꼬리털을 황모(黃毛)라고 한다. 황모는 작은 글씨를 쓰는데 편리한 세필(細筆)을 만드는 주재료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개의 꼬리가 족제비의 꼬리보다 더 크기 때문에 개의 꼬리털은 양도 많고 구하기도 쉽다. 그러나 빳빳해야 하는 세필의 특성상 개의 꼬리털로는 세필을 만들 수 없다. 개의 꼬리 털을 삼 년이 아니라 십 년을 묵힌다고 해서 개의 꼬리털이 황모처럼 빳빳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 꼬리 삼 년을 두어도 황모가 못 된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이다.

개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특이하다. 개 눈은 한 장의 수표보다도 쉰내 나는 뼈다귀 한 조각에 더 끌린다. 이 같은 얘기들이 운명론을 조장하거나 개가 족제비보다 못하고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가 있다며 개를 비하하기 위한 말은 아니다.

개가 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익숙하고 편안한 우물 안을 벗어나 쉰내 나는 뼈다귀 한 조각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거듭나야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자신이 그동안 집착하며 안주해온 습관적 업식 놀음을 알아차리고 대 자유인으로 거듭남으로써 보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이 바로 `개 눈에는 똥만 보이고 개 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가 못 된다'는 속담 속에 숨어있는 내밀한 가르침이다.

개가 됐거나 사람이 됐거나 누구나 거듭나야 하며 개과천선해야 한다. 지혜로운 군자일수록 삼 일 후에 만나면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할 정도로 크게 발전돼 있다는 의미의 괄목상대(刮目相對)란 사자성어 및 매일 매일 새로워진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도 동일 맥락의 가르침이다.

낡고 칙칙한 오랜 업식을 벗어 던지고 새롭게 거듭나는 것은 언젠가 미래에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쇠뿔을 단김에 빼듯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즉시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막연히 언젠가 때가 되면 새롭게 거듭나야지 하고 생각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목숨을 걸고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가야 하듯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선 먼저 크게 죽어야 한다. 크게 죽어서 크게 살아나는 것이 거듭나는 일로써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들 가운데 자신의 삶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해온 모든 악습관을 철저하게 파악한 뒤 타파해야 한다. 온갖 악지악각(惡知惡覺)들로 얼룩진 나쁜 습관들을 끊어내야지만, 비로소 삶이 안정되며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즉시 포맷해야 하는 것처럼 온갖 잘못된 습관에 노예가 된 우리의 탁한 의식인 업식(業識) 또한 포맷을 통해 0점 조정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개 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 못 된다'는 속담이 전하는 내밀한 가르침이다.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하늘이 명한 내면의 본 성품인 `명덕, 반야 지혜인 불성, 성령의 빛'을 밝혀야 한다. 무한 창조성으로 넘쳐나는 순수의식을 회복하기 위해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야 하고, 나 없음의 무아를 깨닫고 크게 죽은 뒤, 크게 살아나야 한다.

이처럼 순수한 의식 및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는 지공무사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선,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습관들을 하나하나 끊어내는 일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언제 어디서나 온전하게 깨어서 매 순간 일어나는 생각 감정에 끌려감 없이 낱낱이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겨야 한다. 그러면 올바른 말과 행동이 절로 절로 발현되며 점점 더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일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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