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반창고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가운데 송송 난 구멍이랑 포장지에서 나는 냄새까지 맘에 들어 할 정도로 반창고를 좋아하는 아이다. 그림책 <반창고/마라 돔페/노랑꼬리별>는 이 아이의 일회용 반창고에 대한 서사를 담은 책이다.
아이가 반창고를 유독 좋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상처를 덧나지 않게 지켜주기도 하지만 상처가 어디 있는지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자잘하게 상처를 입는 것은 다반사여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그런데 아이는 그러지 않는다. 아니, 잊고 싶지 않다. 오히려 상처가 난 상황과 그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 매개체가 아이에게는 반창고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넘어졌을 때 입은 상처, 고양이가 할퀴어 생긴 상처,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파도에 밀려 넘어지면서 난 상처, 자매지간의 치열했던 결투의 흔적 등 상처가 생길 때마다 소녀는 반창고를 붙인다. 스케이트보드 색깔인 보라색 밴드를, 고양이 눈과 같은 색인 노란색, 파도가 일며 생기는 거품처럼 하얀색인 반창고를 그리고 언니와 싸울 때의 감정인 분노의 보라색 반창고를 붙이며 소녀는 기억 속에 꼭꼭 쟁여 넣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상처는 알록달록한 반창고의 효과로 아픔의 기억이 아닌 모험의 흔적으로 변환된다. 그러기에 소녀는 상처를 잊고 싶지도 않고 다음에 겪을 모험도 두렵지 않은 것이다. 외상이 소녀에게는 부정적 스트레스가 아니라 성장 요인인 긍정적인 스트레스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소녀에게 이런 힘을 주었을까?
뻔한 말 같지만 뻔한 것에 진리가 있다고, 가족이 주는 사랑과 믿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작가 마라 돔페도 그림책 <반창고>의 서두에서 넌지시 일러주며 시작한다. “생일 선물로 받은 상자야. 내가 좋아하는 반창고가 한가득 들어 있어.”라는 대목이다. 아무리 아이가 좋아한다 해도 “생일 선물로 그까짓 반창고를!”이라고 타박하며 좀 더 그럴듯한 선물을 말하라 다그칠 만도 한데 소녀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은 모양이다. 한술 더 떠 아이가 좋아하는 치타 그림이 그려진 예쁜 상자에 색색의 반창고를 가득 담아 선물을 했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 그리고 취향까지도 인정하기에 할 수 있는 선물이다. 부모와의 소통은 관계력 향상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지지력은 아이에게 결정력, 감사력을 기르는 자양분 역할을 했을 것이다. 팔과 다리 등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반창고는 아이 일상의 서사가 되어 실수나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원천이 된 것이다.
<회복탄력성/김주환/위즈덤하우스>에서 작가 김주환은 실패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는 상태를 회복탄력성을 지닌 상태라 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회복탄력성'이라 한다면 소녀에게 반창고의 서사는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규칙적인 운동과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키운 마음 근력의 힘은 자기 효능감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앞으로 일어날 문제 해결 능력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은 그야말로 실패를 성공의 원동력이 되고, 오늘의 아픔을 내일의 기쁨의 원천이 된다고 작가는 힘주어 말한다. 아이에게 반창고는 그런 원천이다. 상처를 자신만의 무늬로 만드는 원동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