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책의 제목이다.
지난해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났을 때 나는 책 제목과 내용보다 삽화에 먼저 끌렸다. 모든 삽화는 토마스 산체스의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쿠바의 화가로 명상을 하며 광활한 자연, 숲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림이 사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아주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린다. 삽화만 보았는데도 멍해지고 압도되어 거대한 숲 속에 있는 느낌, 그 자연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스웨덴 출신으로 20대 중반 석유회사 임원이 될 만큼 승승장구하였으나 자리를 포기하고 태국의 밀림 속 사원의 승려가 되었다.
하루 한 끼를 먹고 노동과 기도를 하는 수련을 하며 17년을 지냈으나 승려로서 지킬 계율이 편안해지자 46세에 승복을 벗었다.
환속 후에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고 2022년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은 그의 첫 저서이자 마지막 책이다.
나는 저자를 소개하는 한 단락에 나타난 두 번의 `내려놓음'에 눈길이 갔다.
특히 `승승장구하던 자리를 포기하고', `지킬 계율이 편안해지자'와 같이 `안정된 상태'를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삶의 태도가 놀라웠다.
`안정된 삶'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내려놓음' 중 어떤 것이 더 수월했을까?. 두 번째가 더 쉬운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징한 그에게 익숙한 삶은 40대 후반, 미래가 불투명한 삶의 불안보다 더 참기 힘든 쾌락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선택하는 것이 나이에 맞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는 익숙함을 오히려 경계하였다.
이 책의 중간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산을 오르던 남자가 미끄러져 절벽 바위틈 작은 나뭇가지를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고, 발아래로는 500미터 낭떠러지였다.
겁이 난 남자는 하늘을 쳐다보며 확신 없이 신을 불렀다. 진짜로 존재한다면 나를 좀 도와달라고. 그때 하늘에서 위엄있는 목소리가 `나를 불렀느냐, 널 도와줄 수 있다만 반드시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남자는 `뭐든 말씀하세요'. 그러자 신이 `손을 놓아라' 하였다. 남자는 몇 초 동안 생각하더니 `어, 거기 누구 다른 분 없어요?' 하였다.
신의 목소리를 들은 이야기 속 남자가 부럽지만 나 또한 내 생각을 내려놓지 않는 그와 같다.
비욘은 확신에 찬 자신의 생각, 그 익숙함과 결별하라고,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다고. 그렇다!. 자신의 생각을 더 믿고 다른 분을 찾는 사이 그 남자는 팔에 힘이 빠져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내려놓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완고함으로 바람 한 줄기 들어갈 구멍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런 내게 비욘은 모두 내려놓은 사람으로 자신의 가치관, 자신의 삶마저도 틀릴 수 있다고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겸손을 보여주었다. 스스로를 객관적이라고 하며 타인에게 자신의 것을 강요하는 평범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심연이다.
더운 여름, 비욘이 다시 생각난 것은 더 큰손에게 나를 맡기며 나뭇가지를 힘겹게 부여잡은 두 손을 놓는 연습을 오늘도 열심히 하라는 의미! 너를 위한 시간, 생각, 욕심을 비우고, 네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네 동료, 네 이웃으로 채우라는 의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