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롭기
한가롭기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4.08.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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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면 사람은 저절로 행복해질까?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극한의 빈곤 상황에서 사람이 자존감을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풍요로움과 비례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물질적 풍요로만 논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물질적 궁핍에서 벗어났을 때 사람은 한가로움을 추구하게 된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이곤(履坤)도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한가롭기(閒趣)

我家谷口住(아가곡구주) 나의 집은 골짜기 입구에 있었는데
穿樹一蹊微(천수일혜미) 숲을 뚫고 좁은 길 희미하게 나 있다네
風暖幽禽語(풍란유금어) 바람은 따뜻하고 숨은 새들 지저귀는데
門深過客稀(문심과객희) 문이 산 깊은 곳이라서 지나는 사람 드무네
草華孤自映(초화고자영) 풀과 꽃은 저 홀로 저절로 빛나고
林雨暗成霏(임우암성비) 숲에 비 내려 어둑어둑 안개가 깔렸네
時向淸溪去(시향청계거) 늘 맑은 시내 쪽으로 가다가
逢人坐不歸(봉인좌불귀) 사람 만나면 함께 앉아 돌아가지 않네

한가롭다는 것은 세속의 번거로움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벗어 나면 마음은 저절로 여유로워지는데 이런 상태가 바로 한(閒)이다.

한가함을 추구하는 시인은 거주하는 곳부터 외딴곳인 골짜기 입구로 정했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 숲 사이로 희미한 길 하나가 겨우 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온화한 바람과 지저귀는 새가 그곳에 사는 시인의 이웃인 셈이다. 시인은 자신의 집 대문이 골짜기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지나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지만, 기실은 시인이 세속적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때맞추어 풀과 꽃이 자라나고 가끔 비가 내려 숲에 어두운 안개가 드리우기도 한다. 시인이 하는 일이라고는 날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 쪽으로 거니는 것이다.

거닐다가 혹여 사람을 만나면, 그를 붙들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는다. 길에서 만난 사람도 시인과 마찬가지로 한가로움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일 것이다. 두 사람의 끊이지 않는 대화에 세속이 끼어들 여지는 아예 없다.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좇는 현대인에게 한가로움이란 기껏 호사스런 휴가나 레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세속의 끊음이 아니라 연장일 뿐이다. 평생을 세속을 벗어나 살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과 여유를 만끽하는 한가로움을 누린다면, 삶의 참된 의미에 다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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