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과 죽향초등학교
김현식과 죽향초등학교
  • 정연정 문화경제학자
  • 승인 2024.09.2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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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정 문화경제학자

사랑했어요(1984), 어둠그별빛(1984), 비처럼음악처럼(1986), 내사랑내곁에(1991)로 전설처럼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사랑의 가객 김현식'은 1958년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친가는 충남 홍성, 외가는 충북 옥천이었다.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65년 옥천에서 갈포공장을 경영하기 위해 옥천 처가로 내려오게 된 아버지를 따라 죽향초등학교로 전학하게 된다. 당시 김현식과 죽향초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의 기억에 의하면 갈포공장은 지금의 `그냥찻집' 근방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적부에 따르면 2학년때부터 5학년이 되던 1968년까지 약 4년간 옥천에서 보내다 다시 서울 삼청초등학교로 전학을 했으나 학군제로 인해 다시 서울 수유초등학교로 옮겨 졸업하게 된다. 이 당시 잦은 전학으로 인해 김현식은 친구들과 깊게 사귈 수 없어 많은 외로움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보성중학교를 거쳐 밴드부가 있었던 명지고등학교를 다니다 자퇴하고 어렵게 가수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어머니 류진희씨의 회고에 의하면, 외할아버지 류석동은 당시 군북면 추소리에 모여 살던 문화류씨였는데, 1927년 7월 와세다대학 유학시 김교신, 함석헌, 양인성, 송두용, 정상훈 등과 함께 기독교 신앙지 `성서조선'을 창간하여 후에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외할머니는 유명한 옥천 육씨 가문의 육상순이다.

한편 죽향초 4학년 때 김현식은 옥천에서 열린 노래자랑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고 가수로 성공한 이후에도 곡을 쓰기 위해 자주 옥천을 방문하곤 했다고 어머니는 전한다.

그야말로 서울 촌놈 김현식에게 있어 옥천은 비록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평생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도 정든 그런 곳이었다.

시인 정지용과 육영수여사도 죽항초 출신이다. 지용은 합방되던 1910년 옥천공립보통학교(지금의 죽향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4회로 졸업한다.

지용은 보통학교 재학중이던 1913년 영동군 심천면의 동갑내기 은진 송씨 재숙을 만나 결혼하였다. 학교에는 2003년 옥천문화원 주도로 지용 시 `해바라기씨'를 써 놓은 시비가 서 있다. 1925년 구읍 교동리에서 태어난 육영수여사도 1938년 27회로 졸업한다.

30대 초반에 우리곁을 떠난 김현식(1958-1990)이 죽향초 시절부터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간직하고 있던 옥천 구읍의 파란 하늘, 유난히도 별이 많았던 까만 밤하늘 같은 멋진 정경은 김현식의 노래 곳곳에 배어 있다.

한영애, 권인하, 엄인호, 강인원 등 가까웠던 음악동료들 조차 그가 서울출신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의 고향을 시골 옥천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김현식에게 있어 옥천은 `좋았었고 평화로왔고 외로웠던 마음의 고향'이자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김현식은 육여사의 지원으로 창단된 죽향초 밴드부에서 작은북을 쳤던 것으로 당시 학교 59회 친구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러니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노래하는 나그네 김현식'의 흔적은 지금 구읍 어디에도 없다. 육영수생가와 지용문학관에 비하면 잊혀진 사람이나 다름없다.

구읍 어느 한켠에 그의 노래비나 흉상이라도 있다면 김현식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련한 추억이 될텐데 참으로 아쉽고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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