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
페르난도 보테로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8.12.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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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조직한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Al-Qaeda)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펜타곤)에 테러를 가했다. 이에 미국은 이슬람 세계를 테러의 배후로 지목하고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선포한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알카에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빈라덴을 보호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뒤이어 석유자원을 국유화하여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비밀리에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면서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조직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며 2003년 3월 이라크와의 전쟁에 돌입한다.

전쟁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함락되었고, 바그다드 인근에 있던 정치범 수용소인 아부 그라이브(Abu Ghra ib) 교도소도 미군에게 넘어가 `연합군에 대한 범죄 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있는 정치범들을 구금하는데 사용된다. 무분별한 체포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수감자들은 수천 명에 이르게 되지만 그들을 관리하는 교도관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감자들의 인권이 지켜질 리가 없었다. 더 나아가 당시 이라크 주둔 최고 사령관이었던 리카도 산채스(Ricardo S. Sanchez)는 `전쟁포로들은 모든 폭력행위에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에 위배되는 고문방법을 승인한다.

보테로는 아부 그라이브 사건에 대해 2004년 보도기사를 통해 알게 되고 분노하여 아부 그라이브 89점의 연작을 제작한다. 이 연작은 사건 당시의 모습을 구상적으로 재현하여 죄수들이 겪은 잔혹한 폭력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지만 실제 사진의 모방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 인물들의 몸과는 달리 보테로몰프(대상의 볼륨감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기법)로 변형되어 육중하게 부풀어 오른 연작 속 피해자들의 몸은, 상처입은 몸의 물질성을 더욱 강조하며 관람자들에게 피해자들의 고통을 더욱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연작 <#52> 에서 권력의 구도는 이렇다. 죄수들을 고문하고 학대할 수 있다고 허용하거나 심지어 부추기는 국가 권력에 의해 훈련된 병사가 있고, 그 병사의 손에 이끌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죄수를 공격하는 훈련견이 있다. 가해자인 개들은 목줄에 묶여 있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목줄을 쥔 장갑을 낀 보이지 않는 실체에 의해 움직이는 `손'이 이끄는 대로 죄수를 공격하고 있다. 신체의 일부인 파편화된 `손'또한 가해자의 상징적인 모습으로서 인간이라기보다는 국가라는 거대한 체제를 움직이게 하는 기계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개를 움직이는 실체는 캔버스 밖에 숨어 있고, 고문 도구로 전락한 병사들을 움직이는 국가 권력은 병사들 뒤에 숨어 있다.

보테르는 인권, 민주주의, 연민, 발언의 자유 등 자신이 존중해 왔던 모든 가치들을 보여주었던 미국이 그런 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에 실망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아부 그라이브 연작은 아부 그라이브라는 특정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잔혹성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인 동시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권력 남용에의 시각적 항의인 것이다.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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