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터렐의 라이트 아트 (간츠펠트)
제임스 터렐의 라이트 아트 (간츠펠트)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9.03.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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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오래전 필자는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제임스 터렐의 초기 작품을 관람한 적이 있다. 당시 어두운 방안에 푸르른 빛만이 커다란 벽면에 투사된 작품이었는데, 벽면이 마치 무한의 심해 속으로 이어질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필자는 그 빛 앞에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안에 손을 넣으면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한 허공뿐일 것만 같았다. 작품 가까이 다가가 손을 넣어보았다. 순간 바로 와 닿는 차가운 벽면의 촉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눈에 의한 지각이 공간의 깊이에 대해 혼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필자는 뮤지엄산 미술관에서 제임스 터렐의 다양한 작품을 또다시 직접 체험해 볼 기회를 가졌다. 터렐의 작품은 관람이 아니라 이렇게 체험을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필자가 처음 경험한 것처럼 우리의 지각 방식에 혼란을 야기하며 얘기치 않는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사진은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을 뜻하며 지각의 반응과 연관된 심리학 용어인 간츠펠트(Ganzf elds)시리즈 작품 중 하나로서 필자가 뮤지엄산에서 직접 체험해본 작품이다. 그곳에는 이미 벽, 천정, 그리고 바닥과 같은 건축적인 물리적 경계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푸른빛만이 맴도는 원근감마저 사라진 심연의 우주 속에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유영하는 듯한 `화이트아웃 현상'을 직접 느껴 볼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나의 몸마저 빛에 흡수되어 `원격현전(Tele-presence)'이 되어 차원을 넘나들며 오로지 시각에만 의존하여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터렐은 이처럼 인간의 시지각에 초점을 두고 빛과 공간의 연출을 통해 공간 속에서 빛을 인지하는 관람자가 작품에 몰입하도록 이끈다.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에게 붙는 수식어는 `빛의 조각가'라는 것이다. 조각이라 함은 흔히 뭔가의 물질적인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일차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빛은 그 고유의 성질상 비물질적인 존재이므로 그것을 조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면 다소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터렐은 분명 빛을 재료로 하여 공간에 조각하는 빛의 예술가이다. 왜냐하면 빛을 이용한 그의 작품은 차원을 넘나드는 환영적 공간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제임스터렐처럼 `빛을 통한 공간의 현상학적 체험'이 어떻게 경이롭고 복잡한 지각의 본성을 반영하는지 50년이 넘게 연구한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빛은 사물을 밝혀주는 빛이 아닌 그 자체의 부피와 색을 지닌 빛으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비물질적 실체로서 새로운 시각이미지를 창출하는 그의 라이트아트를 통해 마치 현실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비물질적인 내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터렐은 빛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일루전을 창출함으로써 우리에게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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