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휘슬은 1948년 뉴욕태생 현존 작가이다. 1960~70년대 미국의 미술계는 `회화는 죽었다'는 개념이 팽배했던 시기로서 미니멀아트와 개념미술이 `goo
d art'라 칭송받으며 주류를 이루었고, 형상이 들어간 그림은 `bad painting'라 하여 비평을 받던 시기였다.
그러나 휘슬은 추상회화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구체적인 형상이 들어간 작품을 추구한다.
휘슬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회화적 내러티브'이다. 이는 그림이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휘슬은 이를 위해 시간적, 논리적 관계를 설명하는 장치들을 그림 속에 위치시킨다.
말하자면 다양하게 내러티브를 전개시킬 수 있는 장치를 인간의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이야기와 함께 드러내는데, 시간을 조절하거나 소품들을 이용한 공간의 변화 등을 통하여 내러티브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다.
그의 1979년 작 <몽유병자>에서 내러티브적 요소는 자위하는 소년, 뒷마당에 놓인 어린이용 풀장, 시간적 배경이 되는 `밤', `자위'라는 사건적 요소 등이다. 그러나 관람자들에게 심리적 내러티브의 방향을 열어주는 중요한 상징은 소년의 부모를 상징하는 두 개의 빈 의자와 어린이용 풀장이다. 어린이용 플라스틱 풀장은 단순히 하나의 배경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소년이 너무 커서 그곳에서 수영할 수 없다는 의미와 정신심리학적으로 소년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 해석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한 빈 의자는 과거에 함께했던 누군가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핵심요소로서 부모의 부재를 상징한다.
휘슬은 이 한 장의 캔버스에 회화적 내러티브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결정적 순간의 장면을 강조하면서 순간적으로 시간을 정지시키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이 시점에서 또 다른 주체인 관객은 `의미부여자'로서의 역할 수행을 요구받는다. 그는 “당신이 작품에 참여하지 않고, 관람자가 되는 순간 회화는 끝난다. 나는 관람자들이 작품에 들어오기를 바란다. 독자가 책 안으로 들어오듯이”라고 언급하며 적극적으로 작품 해석에 동참하는 관람자가 되기를 촉구하였다. 이처럼 휘슬은 작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시되고 명확하게 결과가 제시되는 닫힌 내러티브를 지양하고 열린 구조 속에서 내러티브를 구축해나갔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사물이 지니는 고정된 의미는 부재하고, 내러티브의 서술은 여러 방향으로 진행된다.
작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언어로서 작업을 해나간다. 이때 작가의 언어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관객과 만남으로써 또 다른 의미를 생성하고,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 중에 작품의 내러티브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가 된다.
따라서 휘슬 작품에서의 내러티브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가와 수용하는 관람자의 이분법을 탈피하여 관람자가 열린 텍스트를 읽도록 유도한다. 이렇듯 휘슬은 의도적으로 정보의 공백, 시간의 간극, 의미의 가변성, 시간의 변화와 같은 장치를 설치함으로써 관람자들이 해석학적 공백을 인식하고 직접 그 자리를 메우도록 자극하여 `회화적 내러티브'를 구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