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열흘 사이, 반소매 차림이 애매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침저녁이면 선선한 기운이 돈다. 이른바 `처서 매직'이란 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렇게 계절 변화에 딱 맞추어 절기 구분을 한 선조에 대해 놀라움을 넘어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겨난다.
가을이 오는 것은 당장 몸으로 느껴지는 기온 변화뿐만 아니라, 달력만 바라봐도 알 수 있다. 가을의 상징과도 같은 추석이 바로 코앞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억 속에서 이렇게 이르게 추석이 찾아온 경우는 손에 꼽는 듯하다. 과거 농업 중심 사회일 때보다는 그 세가 조금 약해지긴 했어도, 추석은 설과 함께 여전히 우리나라의 큰 명절이다.
추석이면 커다란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우리 지역에서 달구경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영동의 월류봉이다. 영동은 산을 끼고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가 만드는 풍경이 특히나 아름다운데, 그중에서도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월류봉이다.
`달도 머물다 간다'는 뜻의 월류봉 이름은 달이 능선을 따라 기울어가는 모습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높이 약 400m의 동서로 뻗은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월류봉 아래로 초강천이 휘감아 흐르며 특이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이 월류봉은 예부터 아름다운 경치로 이름이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6권 충청도 황간현 조에 `심묘사 팔경'이라 하여 사군봉, 월류봉, 산양벽, 용연대, 냉천정, 화헌악, 청학굴, 법존암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또 다른 말로 `한천 팔경'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월류봉 바로 앞에 있는 한천정사에서 따왔다고 한다.
한천정사는 송시열이 서재를 짓고 학문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학문을 통한 수양뿐만 아니라, 좋은 경치를 구경하며 심신을 수련하는 것에서도 인격 완성을 추구하였다. 그 때문에 송시열 역시 항상 월류봉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게 바로 앞에 건물을 짓고 절경을 즐겼던 것이다.
송시열 사후, 이 서재는 송시열의 제사를 모시고 글을 가르치는 한천서원으로 변하였다가,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지게 되었다. 이후 1910년 유림이 한천정사를 건립해서 현재에 이르며,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월류봉의 인기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방송에도 종종 등장하여 그 빼어난 경치에 반한 이들이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많이 방문하고 있다. 게다가 이곳에는 월류봉뿐만 아니라, 월류봉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둘레길은 산을 끼고, 물소리를 들으며 편히 걸을 수 있도록 숲길과 데크길로 잘 조성해놓아, 귀를 열고 경치를 감상하며 힐링하기에 딱 알맞다. 물론 반야사에 다다르는 마지막 코스에선 약간의 등산도 기다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담하고 조용한 사찰 반야사를 마주하는 순간, 왠지 모를 편안한 기분이 찾아올 거다.
반야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500년이 넘은 배롱나무도 구경할 수 있다. 또 하나, 반야사 앞산 경사면에는 작은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린 것이 보이는데, 그 형상이 마치 호랑이가 꼬리를 치켜세운 모습과 닮았다고 하니 반야사에 들리면 꼭 한번 찾아보시라.
어느새 다가온 가을을 느끼러 영동으로 한번 가보자. 월류봉 둘레길을 걸으며 마음도 차분히 가다듬어 보고, 그러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둥근 달이 떠오르면 과거 송시열이 그랬듯, 월류봉에 걸린 달구경까지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