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은 무심하게 흐를 수 있어도 우리는 무심할 수 없고, 속리산은 세속을 떠나 의연히 있어도 우리는 결코 (사람 사는)세상을 떠날 수 없다.” 약관(弱冠)의 어설픈 시절 들었던 이 문장을 이순(耳順)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이 주옥같은 문장을 함석헌 선생 초청강연회에서 직접 들었다. 때는 바야흐로 투철한 대립의 시절. 군사정권의 유신독재 서슬이 날카롭던 때였고, 숨죽이며 들어야 했던 민주와 자유의 시국에 관한 함석헌 선생의 사자후 또한 이에 맞서 시퍼렇던 저항이었다.
그날이 며칠이고 계절은 어디쯤에 있었으며, 끌려간 이들의 소식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피 끓는 화두 역시 가물가물한데, 유독 이 문장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뼈 속까지 꽉 들어찬 촌놈이기 때문이리라.
그 때는 청주공항이 꼭 필요하다는 여론이 정치권과 기득권을 중심으로 요동치던 시대였다. 거리 곳곳에는 청주공항 유치를 위한 선전 현수막이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함부로 펄럭였고, 이 모습에 대해 함석헌 선생이 “청주가 맑을 청(淸)의 청주가 아니라 탁(濁)주가 되었다”고 일갈했던 속뜻을 깨우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장 빠른 민간의 운송 거점인 청주공항은 도시가 세계와 직접 통하는 청사진이었고, 그 열망은 지금도 대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행형임은 부인할 수 없다.
공항을 통해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면서 `국제'로 향하는 민간의 꿈이 놓을 수 없는 숙명으로 키워가는 동안, 먼저 자리를 차지한 군사공항은 여전히 굳건하다.
그리고 우리는 표적의 도시가 되어 있다. 북한은 지난 20일 동해상으로 두 발의 방사포탄을 발사하면서 각각 337㎞와 395㎞를 겨냥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발사지점에서 337㎞와 395㎞ 지점에 해당되는 지점은 무수히 많다. 북한이 자신을 향해 포탄을 쏘지는 않을 테니, 180㎈의 반원은 모두 위협과 위험지대에 해당한다.
337㎞와 395㎞지점은 우리 당국과 언론에 의해 정확히 청주와 군산으로 특정됐다. 그런 특정으로 인해 불안은 심각하고, 또 벗어날 수 없는 위험지대에 살고 있는 시민이라는 낙인은 지울 수 없다.
국가안보는 한 치도 어긋날 수 없고, 단 한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걸 모르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없다. 그러나 337㎞와 395㎞지점이 청주와 군산으로 특정되어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현실의 시민을 `국가적'으로만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보는 안전보장을 줄인 말이다. 국가 대 국가의 적대적 대립에서 준수되어야할 국민과 국가의 안전은 `안보'이고, 갖가지 사회적 참사로 인해 희생되는 시민과 도시의 피해는 그냥 `안전'으로 분류되는 기준은 어처구니없다.
최첨단 초고성능을 자랑하는 전투기가 발진하면서 적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의 영공을 수호하는 출발점이 청주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 북한 방사포의 337과 395 타점 도발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시민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국가안보이므로 이처럼 가공할 무기가 `청주'에 배치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철저하게 차단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군사보안'이라는데 있다.
그러나 `보안'이 당국과 언론에 의해 무너지고, 가공할 살상반경을 지닌 방사포탄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살아가야 하는 도시와 시민의 위험은 절대로 당연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슬로건은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이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최첨단 고성능 전투기가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고, 게다가 공군의 우수 인재를 키워내는 공군사관학교가 있는 도시의 조건을 시민이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북한에게 337㎞의 목표물에 노출된 도시는 불안하다. 국가 안보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다. 최소한 그런 위험지역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 유사시 어떻게 행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방법이라도 알고 싶다.
무심할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도시에 살고 있는 청주시민은 그저 용감함으로 견뎌야 하는가.
수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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