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5천 년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유교의 핵심 경전은 대학, 중용, 논어, 맹자 등 사서(四書)다. 이 중의 하나인 중용(中庸)은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희노애락지미발위지중) 發而皆中節謂之和(발이개중절위지화)”란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희로애락 등의 생각 감정으로 출렁이기 이전의 고요하면서도 맑고 밝게 깨어 있는 무심한 텅 빈 마음이 천하의 근본이 되는 `중(中)`이고, 중(中)의 마음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천지 만물에 두루 통하며 절도에도 딱 들어맞는 화(和)라는 가르침이다.
중용은 이어 “中也者天下之大本也(중야자천하지대본야) 和也者天下之達道也(화야자천하지달도야)”라고 설파하고 있다. 중(中)은 천하의 으뜸가는 근본 바탕이고, 화(和)는 천지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두루두루 통하는 신묘 막측한 도(道)라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중(中)이 바로 불교에서 강조하는 나 없음의 무념무상 및 공, 삼매 등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주역에서 말하는 음양 이전의 무극 무심과 태극 일심의 상태를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 기독교에서 말하는 `제 안의 온갖 주견을 비워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 상태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화(和)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마음에서 발현되는 반야 지혜가 진공묘유한 대기 대용으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중화(中和)와 일맥상통하는 중용(中庸)과 관련, 공자님은 “君子中庸(군자중용). 小人反中庸(소인반중용)”을 강조하셨다. 군자는 중을 쓰고, 소인배는 중에 반하여 쓴다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공자님은 또 “君子之中庸也(군자지중용야) 君子而時中(군자이시중). 小人之反中庸也(소인지중용야) 小人而無忌憚也(소인이무기탄야)”라는 가르침도 역설하셨다. 군자는 중의 마음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까닭에 언제나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그가 처한 때와 장소에 딱 들어맞지만, 소인배는 중을 쓴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군자와 소인배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밝힌 “君子和而不同(군자화이부동) 小人同而不和(소인동이불화)”란 가르침도 있다. 군자는 처한 상황 및 주변 인연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패거리를 짓지 않지만, 소인배는 3류 정치인들처럼 패거리를 짓고 작당 모의나 할 뿐, 서로 진심으로 소통하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다.
0점 조정이 되어 있지 않은 저울은, 무게를 재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무게를 잰다고 해도 출발부터 어긋나 있는 까닭에, 괜한 문제만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0점 조정된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중(中)의 마음이 아닌, 팔이 안으로 굽는 소인배의 좁아터진 마음으로는, 그 어떤 주의 주장과 분별도 저만의 우물에 갇혀, 제 만족과 이득을 위한 이기적 생각과 말과 행동일 수밖에 없다. 유교는 이와 관련, “군자유어의(君子喩於義) 소인유어리(小人喩於利)” 즉,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의미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지금 나는 내 만족과 이득을 위해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0점 조정된 지공무사한 중(中)의 마음에서, 팔이 안으로 굽는 바 없이, 올곧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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