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노인
감과 노인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4.10.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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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감들이 사라졌다. 어느 공공시설 기관 정원에 있는 몇 그루의 감나무에서 한창 황금빛으로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들이 아침 바람결에 이슬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그는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은 갔지만 쉽게 입을 떼지 않았다.

얼마 전 웬 노인과 중년남자가 감나무 밑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다투고 있었다. 이준은 무슨 일인가 궁금하였다. 가까이 다가가 엿들어 보니 노인이 공공시설기관 마당에 달린 감을 함부로 허락도 없이 감을 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중년남자가 감을 따지 못하게 저지하느라고 노인과 부딛친 것이었다.

중년남자는 그 곳에 관리자 인 듯 보였다. 말리는 관리자와 좀 따면 어떠냐는 노인의 말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을이 오면 이 산 저 들에 익어가는 열매가 하나 둘 이겠는가 사람들은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를 보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곤 하였다.

그뿐이겠는가 하늘도 바람도 물들어 가는 단풍도 가을은 모두의 것일 것이다. 하물며 그런 짓을 아랑곳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쉽게 닿는다고 해서 닥치는 대로 마구 열매를 따가는 바람에 많은 이들의 가을이 지워져가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심지어 공공시설기관 정원에 있는 열매들 까지도 마구 손을 대기도 한다. 결국 노인은 감 따는 일을 단념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며칠 후 빛깔을 드러내며 황금빛으로 탐스럽게 익은 감이 한동안 오가는 사람들에게 가을정취를 눈과 가슴으로 선사하던 아침 그 날 따라 일찍 출근한 관리자가 감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나무에게 가까이 다가가 나무 밑을 살펴보니 감잎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부러진 가지들이 흩어져 있었으며 감들 중에 상처를 입은 것과 덜 익은 푸른 감들이 나 뒹굴고 있었다. 그야말로 감나무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뒤늦게 몰려온 직원들과 관리자는 그 상황을 보면서 누구의 소행인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 날 그 순간부터 감 도둑을 잡기 위해 수시로 감나무 주변을 경계하며 눈을 떼지 않았다.

어떤 직원은 CCTV를 모니터링하면서 그 전 날 감나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의심을 하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이처럼 그들이 화가 난 것은 그 누가 감을 따갔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가을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감 몇 개 따갔다고 사소한 듯 보이지만 그리 쉽게 간과할 일이 아닌 듯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드디어 CCTV 화면에 누군가 감나무를 장대로 사정없이 후리치는 모습이 나타났다.

얼굴이 자세히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관리자의 짐작대로 전에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직원들은 감 도둑을 잡으려고 여러 각도로 의논하고 있었지만 그의 모습을 잘 알지 못하는 관계로 그가 그 곳에 나타나도 그를 알 수가 없었다.

정작 만나서 다투기까지 했던 관리자는 아무런 언지도 주지 않았다. 굳이 그를 도둑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나마 남은 감들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보기 좋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가 나타나 감들을 엿보고 있었다. 관리자는 슬며시 그의 곁으로 다가가 몇 마디 건네주었다.

그 내용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 후로 감나무의 잎새는 단풍이 들고 감은 무르익어 홍시가 될 때 까지 싱그러운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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