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스웨덴 한림원에서 전해져 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가오싱젠, 모옌과 같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이웃 국가 일본과 중국에서 배출될 때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는 것일까'하고 아쉬움과 한계, 일종의 자괴감을 느끼고 있던 우리에게 전해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새벽,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교수로부터 한강의 책을 읽어보았느냐는 질문과 함께 한강의 수상 소식을 전하는 러시아 뉴스를 전해 받았다. 이반 부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미하일 숄로호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요시프 브로드스키 같은 대문호를 배출한 러시아에서도 각종 언론을 통해 앞다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전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시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페레델키노라는 작은 다차촌이 있다. 다차는 주말농장, 별장 정도로 해석되는데, 도시 거주민이 주말을 이용해 도시 외곽에 있는 이곳에 와서 농사를 짓거나 휴가를 즐기는 주택과 텃밭이 딸린 작은 공간을 가리킨다. 버스 종점에서 하차해 인적이 드문 자작나무 시골길을 조금 걷다 보면 구멍가게가 있는 십자로를 만나게 되는데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면`악어', `의사 아이볼리트', `강도 바르말레이' 등과 같은 동화를 쓴 세계적인 아동문학 작가 코르네이 추콥스키의 집이, 오른쪽으로 가면`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집이 나온다. 지척에 사는 이들은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1958년`닥터 지바고'로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추콥스키는 누구보다 먼저 이웃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소련 당국의 삼엄한 감시를 받던 파스테르나크를 방문하는 것이 무모한 일일 수도 있었지만, 외국 특파원들로 둘러싸인 파스테르나크의 집 앞에서, 얼굴을 비추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추콥스키는 닥터 지바고를 칭찬하는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1945년 집필을 시작해 1955년에 완성한 소설 `닥터 지바고'는 1905년 러시아 혁명, 1차 세계대전, 1917년 혁명과 1918년부터 1921년 사이 있었던 적군과 백군 사이의 내전을 배경으로 한, 즉 20세기 전반기 격동의 러시아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서사시와도 같은 작품이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주창하고 정부를 옹호하는 편에 선 이들은 파스테르나크를 중상모략자, 배신자, 위선자라고 칭하고 그를 소련에서 추방하려고 들었다. 결국, 소련작가동맹으로부터도 제명당한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을 조국에서 추방하지 말아 줄 것을 정부에 탄원하며 그 대가로 노벨상 수상을 거부해야 했다.
195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러시아어가 아닌 이탈리아어 번역으로 처음 발행되었던 닥터 지바고는 작가 생전은 물론 1960년 작가 사망 이후에도 오래도록 소련 내에서 출판이 허용되지 않았다. 소설이 소련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은 1988년에 와서야 가능했는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시행했던 시기와도 일치한다.`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 한림원이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다.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유리 지바고는 폭풍과도 같은 시대의 질곡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의사와 작가로서의 사명을 이어가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 지바고는 `살다'라는 의미의 동사 `쥐찌'라는 단어에서 근원한다. 러시아 작가 불가코프의 장편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는 `수기(手記)는 불타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사회와 시대를 통찰하며 그 시대를 기억하고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이 21세기 지금에도 여전히 문학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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