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일 토요일은 마이산(馬耳山)이 마이 산(my mountain)이 된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청주문화원(원장 강전섭)이 주관하는 추계 문화유적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데 속된말로 대박이 난겁니다.
자칭 마이산 홍보대사가 되었고, 마이산의 연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30대와 50대 때 한 번씩 가봤으니 20년 주기로 다녀온 셈이고 삼세번을 주유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출발 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걱정했는데 마이산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산도 하늘도 쾌청하고 마음까지 쾌청해서 보이는 것이 다 아름다움이고 발걸음이 다 즐거움이었습니다.
가을 옷으로 곱게 단장한 마이산의 속살을 보았고, 마이산에 깃든 내밀한 이야기를 들었고, 마이산의 정기까지 듬뿍 받았으니 행운아입니다. 20년 주기로 다녀가서 그런지 낯익음과 낯설음이 교차해 예습과 복습을 동시에 하는 기분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명산이고 알면 알수록 영산이었습니다.
각설하고 마이산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자리한 기묘한 산입니다.
산 정수리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말(馬)의 귀(耳)를 닮았다 해서 조선 태종 때부터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는데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 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束金山)이라고 불린 명산입니다.
암마이봉(암말봉)이 해발 687.4m이고 숫마이봉(숫말봉)이 681.1m인데 숫마이봉 보다 6.3m 높은 암마이봉은 소로가 만들어져 일반인도 쉽게 정상에 도달할 수 있고, 암마이봉 보다 낮은 숫마이봉은 산정이 날카롭고 급경사여서 일반인의 등정이 어렵다니 암수의 구별이 묘합니다.
이런 모습의 마이산 일대가 중생대 후기 약 1억 년 전까지는 호수였다가 약 7000만 년 전에 지각 변동으로 융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간혹 발견되는 민물고기 화석이 이를 입증한다니 지구의 변화와 창조주의 역사하심에 새삼 경악하고 경외합니다.
또 마이산은 남쪽에서 보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군데군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파먹은 것처럼 움푹 페인 크고 작은 굴들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타포니 지형이어서입니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타포니 지형은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로 진안·무주 국가지질공원의 지질유산이기도 합니다.
마이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이갑용(李甲用) 옹이 쌓아올린 100년이 넘은 80여 기의 돌탑들 이름하여 마이산탑입니다.
돌탑하면 마이산, 마이산하면 돌탑이 연상될 정도로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 관광객 유인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이갑용이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여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련하던 중에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석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높이 15m 둘레 20여m의 거대한 돌탑들은 쌓기 시작했다는데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홈을 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고 백 여 년의 세월을 버티고 서있으니 불가사의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가 홀로 30리 밖에서 돌을 날라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을 이용하여 쌓았다니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 돌탑들 사이에 세워진 마이산탑사는 CNN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 중에 하나로 선정해 보도한 바 있고, 마이산 자락에 있는 은수사(銀水寺)는 국내 최대 크기의 법고(1982년 제작)를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내에 마이산 줄사철군락(천연기념물 380호)과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가 있어 나그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합니다.
아무튼 마이산은 예사로운 산이 아닙니다. 아니 명산이고 영산입니다. 산세도 그렇고 지질도 그렇고, 지기도 그렇습니다.
그대도 가보시구려. 정기(精氣) 받으면 마이산이 마이 산 될 것인즉.
/시인·편집위원
김기원의 목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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