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자의 목소리
필자가 이 칼럼에 가장 자주 했던 말이 ‘피로하다’는 말이다. 사전적 뜻은 ‘과로로 정신이나 몸이 지쳐 힘들다’는 뜻이지만 필자가 썼던 ‘피로하다’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지친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필자가 아무리 ‘피로하다’고 부르짖어 외쳐 보아도 한국의 정치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 바로 TV를 켜고 뉴스를 틀면 점입가경의 정쟁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 역사를 한 번 생각해보자. 정권을 잡으면 전 정권의 인사들이 감옥으로 가고 없는 죄도 만들어 정치 생명을 끝장나게 만든다. 다음 정권이 같은 정권이라면 상관없지만 다른 정권이 들어와서 다시 또 이전의 정권 인사들을 징치하고 다시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한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역사다. 이 역사는 한 정당이 너무 오랫동안 정권을 잡은 데서 시작된 다. 오랜 기간을 여당으로 있다 보니 훗날을 생각하지 못했고 그 패악이 복수의 씨앗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한국 정치의 역사를 복수의 정치라고 말해도 심하지 않다. 필자가 정치 칼럼을 쓰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글을 쓰는 건 이런 역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무엇이든지간에 강한 자가 됐을 때 그 처세를 어떻게 하느냐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살면서 과거의 영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잘 나갔을 때를 이야기하며 그리움과 후회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왜 잘 나갔던 때가 있는 것일까? 잘 나가는 채로 계속 살 수는 없었던 걸까? 강자의 자세를 모르기 때문이다. 강자의 자세를 모르면 다시 약자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강자가 됐던 때는 있지만 계속 강자로 사는 사람은 드물다. 강자의 자세를 모르니 그렇다. 강자였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이 글을 마음에 새기기를 바란다. 지금 강자인 사람들은 명심해야 한다.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그 비결을 말씀해 주셨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는 항상 강자로서 강자 노릇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애석히 여기노니, 자신이 이미 강자일진대 늘 저 약자를 도와주고 인도하여 그로 하여금 자기 같은 강자가 되도록 북돋아 주어야 그 강이 영원한 강이 될 것이며, 어느 때까지라도 선진자(先進者)요 선각자(先覺者)로 받들어질 것이어늘, 지금 강자들은 흔히 약자를 억압하고 속이는 것으로 유일한 수단을 삼나니 어찌 영원한 강자가 될 수 있으리요. 약자라고 항상 약자가 아니라 점점 그 정신이 열리고 원기를 회복하면 그도 또한 강자의 지위에 서게 될 것이요, 약자가 깨쳐서 강자의 지위에 서게 되면 전일에 그를 억압하고 속이던 강자의 지위는 자연 타락될 것이니, 그러므로 참으로 지각 있는 사람은 항상 남이 궁할 때에 더 도와주고 약할 때에 더 보살펴 주어서 영원히 자기의 강을 보전하나니라.’-대종경 인도품 26장-
한국사회의 정치는 복수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 또 다른 강자를 약자로 끌어내기 위해 증거도 확보하지 않은 채로 무수히 많은 기소를 하고 그 중에 하나라도 걸리기를 바라는 야만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지금의 정치는 오로지 복수를 낳을 뿐이다. 필자의 눈에는 지금의 강자들이 다시 약자가 돼서 똑같은 핍박을 받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복수의 정치를 놓아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시민 역시 이 복수의 정치를 끝내는 데에 힘을 실어야 한다. 지금은 서로 다른 진영으로 나뉘어져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마음을 놓아야 한다. 아무쪼록 영원히 강자로 살고 싶은 사람은 원불교의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을 마음에 새기고 살기를 바란다. 새해에는 이런 칼럼을 다시 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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