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구사(九容九思)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와 아파트 현관문을 다급히 연다. 부리나케 들어선 집, 순서대로 방마다 창을 열어젖힌다. 그리곤 확인한다. 달빛. 적막하니 고요한 이곳을 비추는, 나의 벗. 높고 푸른 달빛이 있는 이곳, 이곳은 비밀스러운 나의 아지트이다. 그리고 또 다른 벗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신혼살림을 장만할 그 즈음에, 나는 텔레비전의 ‘텔’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로지, 리스닝 장치만을 주장했다. 남편도 나와 같은 뜻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건 이동 시간이건 오로지 라디오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세상의 첫 뉴스도 새벽녘 라디오를 통해 접했고, 번잡하던 하루의 끝도 라디오와 함께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라디오는 나에게 친근한 벗으로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그러니,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되면 콩닥콩닥 마음이 뛴다. 연인인가? 벗인가? 마음이 급하다. 만약 지금이 저녁 6시 즈음이라면 오랜 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신 전 선생을 만나야 한다. 전 선생 특유의 화법과 어투는 6시를 쥐락펴락할 음악들을 진수성찬으로 차려내는 밥상과 같다. 그의 목소리로 안내되는 모든 음악은 내 귀와 마음에 풍요롭고 깊이 있게 자리한다. 또 주말일라치면 전 선생을 대신하는 안 PD를 만난다. 그 또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터줏대감으로 감칠맛 나게 선정한 음악들을 수수하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만약 저녁 6시를 놓쳤다면, 9시 45분을 기다린다. 구성진 목소리의 배~아나운서는 몇 개의 가곡을 소개하고 들려준다. 그 가곡들을 들어야 한밤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처럼~ 10시 이전 귓가에 가곡을 채우지 못했다면, 밤 10시를 사수해야 한다. 시인이자 아나운서인 이 작가의 입장은 밤 10시부터이다. 넉살 가득한 목소리로 청취자들의 마음을 잡아 버리는 이작가는 다양한 클래식의 정수를 맛보게 해주는 음악 프로그램의 DJ이다. 이 작가의 재치 있는 입방아를 듣고 음악을 즐기다 보면 밤은 자정으로 금세 향해버린다. 12시를 알리는 시계 종소리에 다급했던 신데렐라처럼, 다시 못 만날 연인과 헤어지듯 이작가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오늘 못 들은 라디오 청취 프로그램들은 내일이면 새롭게 시작할 테니까⋯. 하루라는 바퀴가 돌아가듯이, 라디오는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내주니, 그 곁에 가 있기만 하면 음악 듣기라는 넓은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
라디오를 듣다가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청취 프로그램에 빠져들었고, 거기다가 진행자들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때로는 진행자의 말소리를 줄이고, 음악만 들려주는 날도 많다. 그런 날은 라디오의 음악만이 내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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