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55주년을 맞은 가왕(歌王) 조용필은 광주, 서울, 대구, 부산으로 이어지는 콘서트 일정으로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겠다.
내 인생에서 조용필과의 조우(遭遇)는 세 번의 연결점으로 표시할 수 있다.
대학 동문인 친구가 출발점이었다. 학과 모임에서 노래 요청이 나올 때면, 그 친구는 으레 조용필을 불렀다.
`창밖의 여자'는 단골이었다. 젊은 친구가 무슨 한이 맺혔길래 저리도 애절할까, 궁금했던 시절이었다.
조용필 오빠부대 출신이 내 곁으로 와서 아내가 된 것이 두 번째 커넥션이었다.
우려할 만한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 조용필의 사진이 들어간 대형 브로마이드(bromide)가 안방이나 거실에 걸리지도 않았고,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그의 레퍼토리가 울려 퍼지는 날도 없었다.
그의 목소리와 노래로 위로를 받는다는 아내의 애창곡은 `꿈'이었다.
최근에는 조용필 마니아(mania)를 알게 됐다. 세 번째 연결점이 된 그는 공교롭게도 대학 동문의 후배로서 바리톤 음성으로 `바람이 전하는 말'을 담담하게 불렀다.
감성 표현이 뛰어나고 음정과 박자 사이를 넘나드는 자유로움 때문에 조용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20년이 넘게 국궁(國弓)을 수련하고 있다고 해서, 서로의 오른손 엄지를 견주어 본 적도 있다.
그의 엄지는 철옹성처럼 두꺼웠다.
웬만해선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지 않던 나였는데, 몇 년 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바람의 노래'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비켜갈 수 없다는 걸/우린 깨달아야 해/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사랑하겠네”라는 대목에선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을 연대기적으로 돌이켜 생각하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