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주겠단 말은 고마운데
돌려주겠단 말은 고마운데
  •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 승인 2024.10.0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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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논객

충북도청 본관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을 모두 허물고 울타리도 없애자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2008년 8월, <충청리뷰> 기자 시절이다.

“등록문화재 55호로 지정된 도청 본관은 남겨두기로 한다. 조붓한 흙길을 낸 뒤에 풀꽃과 나무, 잔디를 심고 상당공원과 경계를 이룬 담장까지 걷어내고 나니 청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 만들어졌다”라고 썼다.

칼럼의 제목은 `도청 건물을 허무는 발칙한 상상'이었다. 충북도청을 다른 장소로 이전한다는 것이 대전제였다. 원도심 공동화를 막기 위해 초고층 아파트를 짓지 말고, 유모차, 휠체어도 걸림이 없이 다닐 수 있는 거리,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도시락도 먹을 수 있는 녹지를 만들자는 얘기였다.

상당공원과 도청, 그 주변까지 야금야금 녹지를 넓혀나가는 걸 상상했다. 본관에는 미술관을 만들자고 했다. 청주 센트럴파크의 탄생이다. 원도심이 독보적 도심이었던 시절처럼 승용차는 없고 시내버스만 다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만남의 거리'였던 `성안길'이 다시 인파로 북적일 수도 있다는 역발상에서 비롯된 가설이다.

“날도 더운데 말도 되지 않는 얘기를 해보겠다”라며 시작한 칼럼은 “`청주 센트럴파크에서 찍은 가슴 찡한 사랑 영화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다…' 더운 날 혼자 해본 말도 안 되는 상상의 결말이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무려 16년 전에 했던 말도 안 되는 상상과 비스름한 일들이 2024년 충북도청에서 벌어지고 있다. 2025년 6월까지, 도청 본관이 그림책 도서관을 주축으로 하는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한단다. 도청 울타리는 이미 걷어냈다.

언뜻 생각하면 16년 전 칼럼을 떠올리게 하지만 대전제부터 다르다. 칼럼이 도청 이전을 전제로 했다면 충북도는 도청 옆 중앙초 부지에 도의회 독립청사와 도청 부속건물, 대규모 지하 주차장까지 건립하고 있다. 이전은커녕 더 넓은 행정단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본관을 문화시설로 바꾸겠다는 얘기다.

충북연구원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고, 9월 중순 공청회도 열렸지만, 그림책 도서관이라는 형해(形骸)는 이미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살을 붙이고 피부를 씌운 뒤 분칠을 하는 형국이다. 이 모든 발상이 도지사와 소수의 `아이디어'임에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도지사실을 여섯 평으로 줄일 때도 그랬고, 도청의 오래된 나무들을 뽑거나 옮겨 심고, 연못 두 개 중 하나를 메울 때도 일단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다. 그 뒤에 하는 설명은 기껏해야 변명이거나 해명일 뿐이다. `김영환 지사는 다 생각이 있구나!'라는 탄식이 나올 따름이다.

`도지사실을 골방으로 만들어 놓으니 큰방에 사는 부지사들은 가시방석이겠단'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혹시 지사가 바뀌어도 쪽방살이를 계속할지 모르겠다.

나무를 베고 연못을 메운 일도 충북도청의 서사(敍事)를 함께 메워버린 것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충북도청은 늘 물이 마르지 않는 방죽이 있던 `잉어배미'에 터를 닦았다. 두 개의 연못이 그 방죽이었다. 그래서 늘 흙물이 솟았다.

그러다 보니 “물을 맑게 하라”는 특명을 내린 도지사도 있었고, “충청권 인구가 호남인구를 추월했다”라며 `영남-충청-호남'의 서열을 매겨 그 방죽에 `영충호(領忠湖)'라는 푯말을 세운 도지사도 있었다.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손바닥만 한 잔디밭만도 못했던 걸까?

대통령도 아니고 당선인 시절에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라며 국방부로 밀고 들어간 예도 있다지만, 돌려주겠단 말을 하기 전에 국민이 진짜 받고 싶어 하는지, 무얼 받고 싶은지는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돌려받은 건 되돌려주고 싶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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