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덕골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덕리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곤산 배씨 집성촌인 이 마을은 저수지 축조로 수몰이 예정되기 전까지 열 가구 남짓한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수 백년 동안 같은 성씨의 사람들이 마을을 지켜온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이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올 연말 농업용수용 저수지가 준공되고 담수를 시작하게 되면 마을 전체가 수몰되기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 청주지사는 이곳에 310여억원을 투입해 다목적농촌용수개발사업, 즉 저수지를 만들고 있다. 바닥면적 5만평(약 18만㎡)에 저수량 55만톤의 소형저수지이다.
작은 저수지 하나 만드는데 10가구가 넘는 한 마을이 통째로 물에 잠기는 것이다.
규모로 볼 때 주민 희생이 너무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도 소형저수지 만드는데 마을을 수몰시키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저수지 조성현장을 방문했던 한 환경영향평가 위원이 “최근에는 소규모 저수지를 축조하는 것이 추세인데, 이 정도의 소규모 저수지를 건설하면서 10가구 가까이를 수몰시키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의아해 했다”고 전했다.
마을이 통째로 수몰될 처지에 놓이면서 사업주체측은 고향을 떠날 수 없다는 주민들을 설득해 마을 가까운 곳에 이주단지 조성을 약속했다.
주민들이 희망하는 이주단지 예정지는 농업진흥지역이었다. 농업진흥지역이 해제되지 않는 한 단지 조성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농축산식품부는 농업진흥지역 해제를 불허했다. 이주단지 조성을 위한 청주시와의 도시계획변경 협의, 충북도와의 농업보호구역 변경 역시 불허됐다.
이주단지 조성 절차가 지연되고 대체부지를 찾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서 주민들이 지쳐갔다.
일부 주민들이 이주단지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단지 이주를 포기했고, 결국 단지조성 최소조건인 이주대상 10가구가 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구순을 바라보는 고령의 배영규씨만 아직까지 홀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일부 주민은 국가사업이기에 협조했지만 돌아온 것은 마을이 사라지고 고향사람들은 실향민으로 전락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사업주체측의 이주단지 약속을 믿었지만 결국 마을에서 쫓겨났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이주단지 조성이 농축산식품부의 농업진흥지역 해제 불허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농업진흥지역 해제 대신 농업보호구역 변경이었다.
충북도 승인 사항인 만큼 사업주체측과 충북도 등이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농업보호구역 변경도 불허했다. 누구도 책임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하는 일이기에 수 백년 동안 조상들이 지켜온 마을을 내주는 대신 고향 가까운 곳에서 살게 해달라는 수몰주민들의 소망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정을 나누며 살아온 마을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실향민 신세가 됐다. 배씨는 아직까지도 갈 곳을 찾지 못한채 저수지 준공을 앞둔 시점에도 중장비의 기계음을 들으며 파괴되는 정든 고향을 지켜보고 있다.
충북은 대청댐과 충주댐이라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형댐 두 곳을 만들면서 많은 희생을 강요받았다. 두 댐이 조성된 지 40여년이 지난 시점에 또다시 지역주민 희생이 재현됐다. 언제까지 주민들의 희생만 강요할 건가.
주말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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