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어르신 성인지 감수성 의식 확장이 중요한 이유
여성 어르신 성인지 감수성 의식 확장이 중요한 이유
  • 신보미 서부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 승인 2024.10.17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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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담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의 수다를 듣다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6·25전쟁부터 월남전 참전까지 다양한 역사가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까지는 가지도 못합니다. 밥 먹고 한참 이야기해도 1990년대까지 가면 많이 간 것입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자 어르신과 남자 어르신들의 근현대사 이야기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듭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참 다릅니다. 남자 어르신들은 대게 월남전에 참여한 자랑스러운 영웅담, 경제호황기에 자신의 사업이 얼마나 잘 됐는지, 역전마라톤을 완주한 자랑스러운 이야기 등을 나눕니다.

공통점은 대게 자신이 얼마나 조국에 헌신했는지, 얼마나 잘 살았는지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자존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삶을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의 뉘양스입니다.

10식구 끼니마다 밥 먹이던 이야기, 찬물에 빨래하느라 힘이 들어 울었던 이야기, 여자라 학교 못 가고 공장에서 돈 벌어 식구 먹여 살리느라 공부에 대한 한이 남은 이야기 등입니다.

어르신들에게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여쭤보면 `남한테 폐 안 끼치고 건강하게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삶을 잘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인정과 지난 세월에 대한 마무리도 중요합니다. 이렇게 `나다움'을 인정하기 위해 여성 어르신들에게는 성인지 관점에서 당신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으며 당신이 이렇게나 잘 살아왔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어르신들에게 성인지 관점을 갑작스레 삶에 투영시키고 이해를 바라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인지 관점을 접하며 차츰 감수성을 높여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젠더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70대 이상 여성 어르신들은 소위 말해 배움의 기회가 충분했던 분들입니다. 그러나 평범하게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 성역할을 강요받은 여성 어르신들은 여성주의 시각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합니다.

성 평등, 성폭력, 인권강의는 복지관에서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어르신들에게 이보다 심화된 성 평등 관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절실히 느낍니다. 그들의 삶이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조차 나에 대한 긍정과 `나다움'을 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주변에서 아무리 당사자를 존중해줘도 그때 뿐입니다.

한 예로 서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여성 어르신들의 성인지 감수성 의식확장을 위한 그림책 마들기`꽃꿈할매'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 만들기를 구실로 성인지 관점을 계속 접합니다.

어르신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한 번에 높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생각하고 접하며 어르신들은 `나다움'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긍정합니다.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갑니다.

여성 어르신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잘살아왔다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내 자랑도 자식자랑만큼이나 목청 높여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동네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고 함께 살아가는 복지관에서 더 다양한 관점을 당사자에게 제공하고 접하게 도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존재, 챙겨주는 존재, 그래서 이만큼 고생했다가 아니라 나 자신의 장점을 더 많이 보길 바랍니다. 당신의 존재를 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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