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얼룩이 생겼다. 날카롭진 않지만 길게 쭉쭉 뻗은 그림자가 얽히고설켜 있다. 이끼가 덮인 곳은 선명하고 색바랜 아스팔트 위 그림자는 짙다. 커다란 종이를 뚫어 검은색 래커를 뿌렸을까 싶다. 뚫은 종이를 바닥에 제대로 고정하지 않아 경계가 모호한 곳도 여럿 보인다. 넓이와 길이가 다르고 어느 것의 그림자 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나하나 떼어 정리해보려 하지만 깨끗하게 떨어질 리 없고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난감한 그림자이다. 헤아리기 힘들다. 풀 수가 없다. 나무그림자다. 그림자를 만들어 낸 나무는, 잎을 다 벗어내고 앙상하게 남은 가지는 어느 것 하나 겹치거나 부딪치는 것이 없다. 오래 키워온 줄기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해묵은 가지, 햇가지에 따라 굵고 가늘고, 거칠고 매끈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순서를 두고 나고 자랐고 행여 다른 나뭇가지에 치여 자라기 힘들 때는 햇빛을 찾아 뻗어 나갔다. 위가 무성하게 자라 도저히 빛을 받을 수 없다 싶으면 죽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여 절대 부딪히거나 겹치는 나뭇가지는 없다. 그런데 그림자는 얽히고설켜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둥그렇던 그림자였다. 바닥에 밝은 얼룩을 만들어 내더니 많은 구멍을 만들어 냈다. 이젠 동그란 구멍과 둥그런 그림자는 없다. 모가 나고 각이 잡힌, 쭉쭉 뻗었기에 자기만의 모양을 갖춘 나무다. 두리뭉실하지 않고 개성 있게 자기의 모양을 드러냈다. 어쩌면 이것이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간 잎과 꽃과 열매로 덮고 치장하며 한껏 멋을 부렸지만, 이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단신으로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빈틈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의 넓이와 길이가 더 길어졌다. 매년 달고 덜어내는 것을 반복하며 성장했다. 잎에 꽃에 가려 보이지 않던 가지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성장함에 성장하고자 함에 포기란 진즉에 없었다. 추위 때문에, 마구잡이 꺾임에도 포기한 적 없었다는 것이다. 그대로 받아들였다. 잠시 주춤하고 더딜 뿐이지 다시 움직였다. 다시 움직일 힘을 가지에 품고 있었다. 그리고 뿌리는 지켜보고 기다려줬다. 묵묵히 살아왔던 것 같다. 어차피 세상의 많은 것들이 진심을 알아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거슬리는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보단 더 촘촘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싶다. 긴 호흡을 하고 있었다. 물이 없으면 물을 찾아 뿌리를 뻗었다. 미세한 뿌리는 어둡고 건조한 곳을 뚫고 물기를 찾았다. 못 뚫을 장애물이라면 한 참이 걸리더라도 비껴갔다. 그러면서 가지는 더 많아졌다. 뿌리가 뻗은 만큼 가지는 성장했다. 한쪽으로만 간 게 아니다. 여러 갈래의 뿌리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입체적 움직임이었다. 어느 멋진 나무를 바라보며 그리 크겠다 한 것이 아니다. 그저 햇빛과 물이면 족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름의 방식으로 커나갔다. 순간순간을 이어가고 이어갔다. 그러는 사이 줄기에 연륜이 더해졌다. 잎을 모조리 떨군 가지는 바람을 덜 탄다. 바람 탈 것을 떨구어 냈기 때문이다. 잎을 떨구어 냈는데 형체가 잘 갖추어졌다.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가지, 서로 충돌되는 가지가 없다. 이제 당당한 실체가 되어버린 것인가? 아마도 꿈을 이뤘겠다 싶다. 이제 나름의 영역을 갖췄다. 이제 지속적으로 키워내고 확장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이어가는 시간만이 오래도록 있을 듯싶다.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질문을 스스로 했었을까? 어쩌면 질문보다는 묵묵히 살아가는 실천적 움직임의 시간만이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수많은 시간의 기억을 포개며 사방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포개진 그림자는 갖가지 문양을 가지고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그림자는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마도 지칠 줄 모르는 뿌리가 움직이고 있나 보다.